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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수와 장수마을

샛길 2014. 7. 1. 11:40

보이세요? 이 마을의 다른 점, '장수마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동네목수’와 둘러 본 삼선동 장수마을

 

 

 

 

 

 


 서울에 한 바탕 건설과 재개발 바람이 불 뻔했다. ‘내 집’부터 팔아야 하고, ‘내 아파트’만큼은 재개발해야 한다는 욕망들은 6·4 지방선거에서 분출구를 찾지 못 하고 잠시 주저앉았다. 이제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왜 더불어 살면 더 잘 살 수 있는지, 왜 다 허물지 않는 편이 더 가치 있는지를 말이다. 그러지 못 한다면 다시 바람은 불 것이다. 눌려 있었던 만큼 더 거세게.

 스마트폰 지도는 분명 지하철역 입구에서 도보 13분이라고 했다.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꽤 경사진 오르막이다. 서울 성곽길에 인접한 마을로 가는 길이니 그럴 수밖에. 양쪽에 연립주택들과 세탁소, 철공소 등이 늘어선 고즈넉한 골목길을 13분 넘게 올라가다가 지도를 찍어보니 아직 3분의 1도 안 왔다. 점점 강해지는 오전 햇볕이 부담스러워진다.  


 3분의 1쯤 더 올라가니 ‘장수마을’이라 적힌 표지석이 서 있다. 오른쪽 길은 성곽을 따라 올라가는, 새로 조성된 듯한 길이고, 왼쪽 길은 나지막한 집들 사이로 꼬불꼬불 올라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가다보니 길이 합쳐져 어느새 성곽길을 걷고 있다. 양복바지에 등산모를 쓴 할아버지들이 씩씩하게 걷는 사이에 멍하니 서 있다 다시 지도를 찍어 보니, 다행히 잘못 온 건 아니다. 얼마 후 주택가 쪽으로 빠지는 계단이 보인다. 그리로 내려가 어느 집 방문 바로 앞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몇 차례 꺾어들자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거기, 장수마을이 펼쳐져 있다.

 167채의 낮은 집들이 옹기종기 앉은 마을,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이 아닌 조금씩 고치고 수리하면서 골목과 사람, 이웃을 지키기로 한 마을.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 ‘동네목수’와 함께 사회적경제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장수마을’이다. 그리고 그 마을을 내려다보는 명당자리에 ‘동네목수의 작은 카페’가 있다.

전면 철거 재개발의 대체 모델을 찾자

 

 얼음 띄운 매실차를 앞에 두고 한숨을 돌리면서, 마주앉은 동네목수 박학룡(45) 대표에게 장수마을 지명의 유래를 물었다. “조선시대부터 불려온 유서 깊은 이름, 그런 건가요?” 박 대표는 “서울에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했다.
 
 그럼 왜 이 곳, 서울 삼선동 1가 300번지 일대, 혹은 한 때 ‘재개발 예정지 삼선 4구역’이었던 이 동네는 ‘장수마을’이라고 불리게 된 걸까?  “2008년에 주민들이 여러 후보를 놓고 투표해서 정한 이름이에요.”


 그렇다면 여기는 성미산마을처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온 공동체인 것일까? “아닙니다.” 박 대표는 그런 기대도 뚝 잘라버린다.

 이번에는 아예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하고 물었다. “원래 목수일 하셨나요?”, “전혀 아닙니다.”

 

 2008년 여름, 굳이 직업을 규정하자면 '시민운동 활동가'에 가까웠던 박 대표는 주거권운동네트워크 일을 하고 있었다. 인권운동사랑방, 동자동사랑방, 성북주거복지센터 등과 함께 ‘재개발 착수가 불가능한 재개발 예정지’를 찾았다. 전면 철거식 재개발에 대한 대안 모델을 만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가능성 없는 재개발 기대에 낡아가던 마을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이 곳, ‘성북구 재개발 예정지 삼선 4구역’이었다. 성북구 일대에서 살아 온 박 대표가 잘 아는 지역이기도 했고, 재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게 여러 가지로 명확했다.

 첫 번째 이유는 위로는 서울 성곽, 밑으로는 서울유형문화재 37호인 ‘삼군부 총무당’이 버티고 있어서 층고 제한이 엄격하다는 것이다. 즉, 재개발을 해 봐야 고층 건물을 올릴 수 없으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것. 

 두 번째는 고령 인구가 많고 가구당 평균 소득이 100만원이 채 안 되기 때문에 전면 신축  재개발의 부담금을 감당할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주민들 스스로 재개발 예정지 해지를 추진하기는 어렵다. 박 대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표현했다. 일부라도 개발을 기대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주거 환경은 심각한 수준으로 낙후돼 간다.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건물을 돈 들여 보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지역은 세입자 비중이 60~70%에 이르기 때문에 집이 허물어질 수준이 돼도 고칠 엄두를 못 내고 살아가는 실정이었다.

“고쳐가면서 사는 것이 대안이다”

 박 대표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지정 해지를 위해 동의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토지 및 주택 소유자 30%의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60~70%가 외지에 사니까, 물리적 대면 자체가 힘들죠. 연락처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연락이 닿아도 바쁘다며 안 만나줬어요.”

 

 그럼에도 만나서 설명했을 때 동의해 주는 비율은 꽤 높았다.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나올 법도 한데, 의외로 그렇지 않았다.
 “이미 재개발 가능성이 없는 걸 대부분 알고 있더라고요. 더 이상 손해 보지 않으려면 실거주자에게 팔거나, 아니면 고쳐서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니 납득을 하곤 했어요.”
 
 그렇게 해서 2013년 5월, 드디어 삼선 4구역은 재개발 예정지 지정이 해제됐다. 그리고 그러는 한편 동네를 고쳐 나가는 일도 진행됐다. 2011년 박 대표가 창업한 ‘동네목수’를 통해서였다.


‘동네목수’의 빈집 고치기 프로젝트

 2011년 서울시 마을기업으로 지정돼 지원을 받았고 지난해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으로도 선정된 ‘동네목수’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빈집 프로젝트’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로 낙후된 집을 먼저 동네목수가 비용 부담을 해서 고친 뒤, 세입자를 구하면 그 전세보증금으로 집주인이 공사비를 지불하도록 하는 방식의 사업이다. 

 


 이렇게 10여 채를 고쳐오면서 자연히 새로운 모델도 생겨났다. ‘순환임대주택 프로젝트’다. 집을 고치는 동안 나가서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인데, 고쳐 놓은 빈 집을 동네목수가 세 내서 집수리 중인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도록 단기 임대를 하는 것이다. 
 순환임대주택은 최근 3호까지 생겨났고, 덕분에 안심하고 집수리를 맡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동네목수가 한 중요한 역할은, 주택 보수비용 일부를 공공이 부담하도록 설득해 낸 일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도로와 공동 구역 정비까지는 지원해도 주택 자체 수리는 철저히 개인 몫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동네목수가 내세운 가치는 바로 ‘경관’이다. 서울 성곽길이라는 역사 유적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거 모습이 남아 있는 생활 경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설득을 위해서는 ‘다 허물고 새로 짓는 것보다 지금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공감대가 필요했다. “유사 사례를 찾아 설득하기도 했지만 시대적 흐름 영향인지 자연히 공감대가 생겨나더라”고 박 대표는 전했다.  

  

구석구석 손길이 살아있는 동네로

 

 동네목수의 목표는 2015년 말까지 전체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70채 수리를 완료하는 것이다. 이미 양호한 곳도 있고 직접 고치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쯤 되면 장수마을의 주택 정비는 어느 정도 되는 셈이다.

 주택 바깥의 공사들도 있었다. 지난해 말, 시와 구청의 지원을 받아 마을 전체에 도시가스 관을 놓은 것이 가장 큰 규모였다. 석유보일러를 사용하던 주민들이 가장 반긴 일이었다. 공사 과정에서 골목길 계단 보수과 난간 및 CCTV 설치 등이 이뤄져 동네의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이런 설명을 들으며 박 대표를 따라 장수마을을 둘러봤다. 계단과 난간, 주택 외관뿐만 아니라 담벼락 작은 부분에서도 세심한 손길이 엿보였다. 관심을 받고 있으며, 점점 좋아져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동네였다.

 마을박물관 쪽으로 가는데 똑같은 머릿수건을 쓰고 걸어오는 할머니들이 보인다. 인근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대지를위한바느질’ 이경재 대표와 함께였다. 이 기업이 오는 주말 진행할 친환경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이 곳 주민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고 했다. ‘마을사랑방’ 공간에서 일하다 점심을 먹으러 마을박물관 2층 마을부엌으로 가는 중이었다. 주민들은 이렇게 경험을 쌓은 뒤 식당을 낼 계획도 있다고.

 

“주민 자치 공동체가 만들어져 가도록”

 장수마을 경계에 해당하는 도로로 나오자 ‘할머니 쉼터’라고 쓰인 정자에서 점심을 나눠 먹는 할머니들도 보인다. 일찍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 한 할머니는 바로 앞 도로변 쪽문을 열고 들어가려다가 난처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아이고, 문을 잠그고 나와 버렸네. 어쩌지?”
 박 대표는 주위를 둘러보다 녹슨 대못을 주워 쥐고 다가가서는 몇 분간 씨름하더니 문을 열어준다. “그래서 집 주변에 이런 대못이 있으면 안 돼요. 이건 제가 치워드릴게요.”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노인정 건물 2층에 동네목수 사무실이 있다. 그 지하에는 목공 작업장이 있는데, 요즘은 종로자활센터를 통해 온 몇몇 할아버지들이 간단한 집수리와 목공 배우면서 자활을 준비 중이라고. 이런 교육을 일거리로 연결하기 위해 동네목수는 목공 DIY 제품 개발 팀도 두고 있다.

 이미 공사 과정에서 생겨나는 일자리를 최대한 주민들에게 돌리고 있는 동네목수가 이렇게 주민 일자리 창출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일과 소득의 문제까지 해결돼야 주민 자치의 공동체가 가능할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면, 주민들 스스로 이뤄 온 일들은 아닌 게 사실이다. 개발의 이득이 충분한데도 보존의 가치에 주목해서 공사를 멈췄다거나, 주민 스스로가 필요와 능력에 기반해 마을기업을 일궈가는 식의 이상적 사례는 아닌 것이다. 박 대표는 “그런 점 때문에 실망감을 표하시는 분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수마을 모델의 의미 또한 분명하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잘 되는 사례를 찾아서 더 잘 되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역량이 모자라는 사례에  힘을 보태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장수마을 이웃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었고, 어려운 사람들도 그 고리를 통해 버텨 오고 있었어요. 재개발이 진행됐거나 그대로 낙후해서 공동화 됐으면 이 분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더 이상 기댈 데가 없어졌겠죠. 그걸 누군가는 지키고 유지해 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우리 동네에는 있을까? 동네목수

 

 그런데, 장수마을 정비가 끝나면 ‘동네목수’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주거지를 보는 관점이 달라져 가니 일거리가 많이 생겨날 겁니다. 아직 여기서도 할 일이 많고요.”

 분명 작은 동네인데도 다 둘러보고 나니 기운이 쭉 빠진다. 가만 보니 느긋한 표정과 달리 박 대표의 걸음이 무척 빠르다. 설명하는 사이사이 다른 지역 재개발 해지 관련 상담 전화를 받고, 길에서 만난 주민의 하소연에도 일일이 답하는 등 소리 없이 바쁘다. 진짜 목수는 아니라지만 이런 ‘동네 목수’ 한 명 있다면,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동네에는 있을까? 허물지 않고 지켜야 하는 가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이런 동네목수가. 꼬불꼬불 길을 돌아 나오는 동안 내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장수마을이었다.

-글 황세원(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장수마을 홈페이지: http://www.jangsumae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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