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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소개된장수마을

[경향신문] 60년대 풍경의 동네가 텃밭 일궈 ‘희망 동네’로

원문 바로가기(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051817425&code=210000

[창간 65주년 특집]60년대 풍경의 동네가 텃밭 일궈 ‘희망 동네’로

ㆍ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

모두가 먹고 살 길을 찾아 서울로, 서울로 밀려들었던 1960~1970년대. 서울 곳곳 비탈마다 집들은 빼곡히 돋아났다. 좁은 골목과 가파른 계단 사이로 가난한 사람들의 꿈이 너울거렸다. 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도 이맘때 형성된 달동네다. 현재 150채 314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장수마을은 2004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한바탕 풍랑을 겪었다. ‘삼선4구역’이란 새로운 이름이 붙자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주민들은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나거나 세입자가 됐다. 외지 가옥주 비율이 80%가 넘어갔다. 골목엔 꿈 대신 술병이 나뒹굴었다. 언제 헐릴지 모를 ‘죽은 동네’로 변했지만 인근 문화재와 급경사 탓에 재개발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분위기가 침체돼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지난달 22일 찾은 장수마을엔 새롭게 생기가 돌고 있었다. 집집마다 옥상과 담벼락 아래 꾸며 놓은 텃밭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주민들은 땅을 한 뼘도 그냥 놀리지 않았다. 고무대야와 화분을 동원하고 비닐하우스까지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1960~1970년대에 지어진 집들이 빼곡하게 모여있는 서울 삼선동 장수마을. 한 주민이 옥상에 마련한 텃밭에 물을 주고 있다. |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2004년부터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한 송명순씨(79)의 단칸방 앞에도 고추와 상추를 심은 상자텃밭 여러 개가 줄지어 있었다. 송씨는 “아침에 일어나 쳐다보기도 하도 만져보기도 하고 예뻐도 해주고 음악도 틀어주고 상자텃밭을 돌보는 데 아주 재미를 붙였다”며 “꼭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애착이 생겨 좋다”고 말했다.

장수마을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시농업을 시작했다. 재개발예정지가 되면서 급속도로 황폐해진 마을에 ‘다시 이곳을 가꾸고 살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였다. 박학룡 장수마을대안개발연구회 대표(42)는 “장수마을의 도시농업은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가꾸고 애정과 애착을 갖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며 “집을 새로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도시농업은 비교적 손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월 발행되는 마을소식지 <장수마을 이야기>엔 ‘텃밭달력’ 코너도 만들어졌다. 천연비료와 재활용 상자텃밭 만들기, 화분농사 잘 짓는 방법, 배추·무 모종 만들기 등 텃밭을 가꾸는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싣고 있다. 박 대표는 “주민들이 잘 모르고 약도 막 치고 하니까 친환경 텃밭을 관리하는 요령을 안내하는 차원에서 코너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작단계에선 우여곡절도 많았다. 마을을 둘러친 성벽이 삭막해서 성벽 밑에 자루텃밭 200여개를 둔 적이 있었다. 근처 주민들이 물을 주면서 마을공동경작을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알리지 않아 오가는 주민들이 하나둘 자기 집으로 가져간 것이다. 일주일 만에 200여개의 자루텃밭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주인 없는 나대지라도 있을라치면 서로 차지하려고 신경전도 벌였다. 지금은 자율적으로 이웃끼리 구역을 나눠 작물을 키우고 있다.

장수마을에서 50여년을 살아온 주민 김금춘씨(75)도 ‘투쟁’ 끝에 나대지 일부를 차지해 배추와 콩, 호박을 심었다. 김씨는 “이전까지 이곳엔 쓰레기덩어리와 가구 같은 것들이 쌓여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해서 보기도 좋고 새벽같이 일어나 물 주는 재미도 있다”며 “얼른 마을이 번창해서 이 마을에서 계속 편안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새롭게 피어나는 희망 뒤편의 숙제거리는 여전하다. 세입자인 주민들은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낡은 집을 못 고친다. 자기 집에 사는 주민들도 국공유지에 지어진 무허가주택이라 어마어마한 변상금 폭탄을 안고 있다. 도시농업을 소일거리와 반찬거리 장만 차원을 넘어 가계소득의 원천으로 키워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박학룡 대표는 “마을기업을 만들어서 큰 부담 없이 주민들의 집을 고쳐주기 시작했다”며 “여기서 계속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도시농업이 그 동력이 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서화 기자 tingco@kyunghyang.com>


입력 : 2011-10-05 18:17:42수정 : 2011-10-05 22:3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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