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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소개된장수마을

폭설에 고생하는 장수마을(삼선4구역)을 취재한 한겨레신문 기사

한겨레신문 권오성 기자가 취재한 내용입니다.

출처: 한겨레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7568.html)

빙판길에 연료도 끊길라…밖에서도 집에서도 덜덜
‘제설 사각지대’ 서울 성북구 달동네에선…
노인·장애인 가정 많은데 수도 얼고 지붕 내려앉아
시에선 아무런 대책없어 우리가 국민이 맞나 서럽다
한겨레 권오성 기자 신소영 기자
» 김순자 할머니가 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삼선동1가 집 앞에서 눈을 치우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6일 낮, 서울 성북구 삼선동 달동네는 지난 4일 폭설이 내리고 이틀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매서운 추위 탓에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동네 골목길은 대부분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만 눈이 치워져 있다. 길 양옆에는 이틀 전 내린 눈에 치운 눈까지 얹혀 수북하게 쌓여 있다. 햇볕을 쬔 곳은 눈이 녹다 말고 얼어붙어 오가는 사람을 겁나게 만든다. 동네 들머리에서 만난 주민 송명순(78)씨는 “이 동네 주민 270여가구 가운데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을 돌보는 가정이 많아 혹시 다칠까봐 대부분 집 안에 틀어박혀 있다”고 말했다.

이번 폭설로 ‘달동네 서민들’은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다. 마을 주민 이아무개(73)씨는 눈이 하염없이 내리던 지난 4일, 집 바깥에서 3시간가량 떨고 있었다. 전날 강추위에 수도관이 얼어 터졌고, 이를 해결하러 집 밖으로 나섰다가 눈 속에서 집 열쇠를 잃어버린 것이다. 열쇠 수리공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달동네라 아무도 오려 하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경사진 계단을 힘겹게 내려가 동네 어귀의 철물점에 통사정을 한 뒤에야 가까스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있었다.

대부분 지은 지 40~50년이 지난 이 지역의 집은 여느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무척 낡았다.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지붕 일부가 내려앉거나 구멍 난 지붕을 통해 눈 녹은 물이 새어 들어오기도 한다. 주민 김순자(75)씨는 이날 노구를 이끌고 지붕 위에 쌓인 눈을 치우느라 고생을 했다. 지붕에 덧대어놓은 널빤지 등은 이미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내려앉았다. 김씨는 “널빤지 밑에 보일러가 있는데, 이 추위에 보일러마저 멈춰 버리면 큰일 날 것 같아 눈을 치우고 있다”고 했다.

방한 대책도 난감하다. 주민 송씨는 “요즘 같은 밤이면 찬 기운이 쌩쌩 들어오지만 기름을 아끼느라 웬만해선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이 얼어붙어 연료 공급이 끊기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도 크다. 주민 김씨도 “보일러를 틀지 않고 잤더니 아침에 문이 얼어붙는 바람에 물을 끓여 문에 붓고 나서야 겨우 나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볕이 드는 날이면 아예 집 바깥 양지에 나와 지낸다. 집안보다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들 달동네에 제설 작업 지원 등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때문에 주민들 불만이 적지 않다. 이 마을에서 40여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평소에도 서러웠지만 이런 일이 닥치고 보니 우리는 이 나라 국민이 맞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이에 삼선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도로와 인도 등의 제설 대책만으로도 인력이 빠듯해 달동네 골목길 등은 대책 세우기가 힘들다”며 “지역단체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달동네 사람을 돕는 사람은 오직 이웃들뿐이다. 송씨는 “늙은 할머니가 눈을 치우려 해봐야 힘에 부치는데, 동네 남자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눈을 치우고 연탄재를 뿌려준 덕분에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며 “그래도 이웃들이 있어 죽지 않고 산다”고 했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