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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와 소식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는 장수마을(삼선4구역)

10월 5일부터 열리는 디자인비평전 "이야기와 이야기" 자료집에 장수마을(삼선4구역)을 소개하기 위해 간략하게 쓴 글입니다.
수많은 사건과 사연, 이야기들이 있는데 몇 줄로 간단히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 합니다.
앞으로 차츰차츰 소개해나가기로 하고, 대략적인 분위기 파악용으로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디자인비평전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조현신 교수님께서 기획하여 진행하는 전시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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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 소개

삼선교 장수마을은 서울의 내사산(남산, 인왕산, 북안삭, 낙산) 중 하나인 낙산 자락의 서울성곽을 등지고 미아리 방향의 가파른 비탈에 자리잡은 작은 달동네다. 장수마을이라는 이름은 원래부터 쓰던 것이 아니고 최근 1~2년 사이에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2004년에 서울시가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하여 삼선4구역으로 불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너무 딱딱하다 하여 2008년 가을 주민모임에서 마을 이름짓기를 하였다. 마을에는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많고, 그래서 그런지 길마다 장수길로 불리고 있어 마을 이름도 장수마을이라 지었다.

장수마을은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직도 시골의 정취와 인정이 남아 있는 곳이다. 휴일이면 골목골목 집집마다 문을 열어 놓고 한 집처럼 서로 왕래하고, 길가 나지막한 옥상에는 이 집 저 집 빨래를 같이 널기도 한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환갑이 넘은 할머니가 이 마을로 시집올 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할머니가 시집올 당시 중학생이던 옆집 아이는 지금은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누님 동생하며 식구처럼 지내고,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은 누구집 자식이든 친손자처럼 너나 없이 보살펴준다.

마을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일제 때에도 성곽 위에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고, 주변에 더러 움막이나 판잣집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에서 오래 살았다는 어르신들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 전후하여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으나 마땅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여 당시에는 변두리였던 이곳 낙산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산비탈의 빈 터에 자리를 잡아 땅을 고르고 성벽의 돌을 가져다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워 루핑(기름을 먹인 종이)으로 지붕을 씌우면 그런대로 지낼만한 움막집이 됐다. 형편이 나아지면 조금 더 그럴싸한 판자집으로 바꾸기도 했으나 1968년경 무허가주택에 대한 양성화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오후에 집을 지어 밤을 보내고 나면 낮에 공무원들이 와서 헐어버리곤 했단다.

자기 땅을 갖지 못하고 국공유지 무단점유자로서의 고단한 삶은 50여년 동안을 이어져오고 있다. 중간에 땅을 불하받아 소유하게 된 경우도 더러 있지만, 마을 땅의 70%는 아직도 국공유지로 남아있다. 대부분 주민들은 국공유지를 점유하고 있는 무허가 가옥주로서 매년 수백만원씩 변상금을 물고 있다. 수십년 같은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아온 이들에게 변상금은 참으로 황당하고 억울한 일이다. 꼭 억울해서만은 아니지만 빠듯한 살림에 변상금까지 낼 형편이 아니기도 해서 대개는 변상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다. 집마다 밀려있는 변상금이 수천만원에 이른다. 변상금이 마을의 최대 현안인 셈이다.

장수마을은 올해로 벌써 5년째 재개발예정구역으로 묶여 있지만 개발은 전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위로는 서울성곽, 아래로는 삼군부총무당이라는 문화재가 있어서 고층아파트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나서지 않는 모양이다. 한때는 공원이 되면 철거민 특별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외지인들 사이에 투기 바람이 불었으나 지금은 잠잠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수마을은 개발이 안 되어 근대도시의 서민주거지 형성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사가 심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주민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불편한 존재다. 굴곡이 심한 지형에 대강 터를 잡고 어설프게 세운 집은 어느새 낡아서 불안하고 불편하다. 그래도 집집마다 옥상이나 담벼락, 길모퉁이를 가리지 않고 자투리 공간마다 화단을 만들거나 화분을 놓아 화초를 가꾼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예측불허의 동선을 그리며,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집의 생김새는 건축디자인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삶터를 일구기 위한 곤궁한 손길이 계획 없이 켜켜이 쌓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독특한 분위기다. 그 속에서 고단한 삶을 견뎌온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불편하고 부끄러운 공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독특한 정취야말로 외부인들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호기심이 가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급스러운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고, 간혹 인터넷이나 책에 아름다운 골목길로 소개되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몇몇 시민단체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가꾸는 대안개발을 해보자며 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던져버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불편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보존할 가치가 있고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갖게 되었다. 마을이 지닌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주민들의 삶의 질을 조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꼭 찾아서 모든이에게 사랑받는 장수마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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